3) 신라 3성 박씨 석씨 김씨
박씨
신라 6부의 촌장들이 하루는 알천(閼川) 언덕에 모여 나라를 다스릴 군장을 추대할 것을 논의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양산 아래 나정(羅井) 곁에 무지개 같은 서기가 뻗치고 그 아래에는 말이 꿇어앉아 우는 것이 보였다. 고허촌장 소벌공이 그 광경을 바라보다 쫓아가 보니 말은 간 곳이 없고 알 같기도 하고 박 같기도 한 큰 포(胞)가 놓여져 있었다. 소벌공이 이것을 쪼개어보니 어린 아기가 나왔다. 이 아기를 데려다가 키웠는데, 그가 나온 알의 크기가 박만하다고 해서 박의 음을 따서 성을 박(朴)으로 지었다고 전한다. 이름은 혁거세(赫居世)라 지었는데 그 읽는 법과 뜻은 전해지는 바가 없다. 나이 13세에 영특하고 조숙하므로 그를 높여 거서간(居西干)으로 삼았다. 거서간은 귀인을 일컫는 말이다. 이것이 신라 건국 원년(기원전 57년)이고, 바로 이 사람이 박씨의 시조가 되었다.
석씨
신라의 동쪽 지금의 일본에는 왜국이 있고 그 동북쪽으로 1천리 떨어진 곳에 다파나국(多婆那國)이라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다파나국의 왕이 여국왕의 딸에게 장가를 들어 아이를 가진지 7년 만에 큰 알을 낳았다 한다. 이에 왕이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 생각하여 큰 알을 내다 버리라고 하였다. 여자는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큰 알을 비단으로 싸고 금궤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다고 한다. 금궤는 금관국을 거쳐 진한의 아진포 포구에 이르렀는데 바닷가의 한 노파가 이를 건져내고 그 아이를 데려다가 길렀다. 이 때가 박혁거세 39년(기원전19년)이었는데 금궤에서 빠져 나왔다 해서 아이의 이름을 탈해(脫解)라 짓고, 금궤가 바닷가에 닿을 때에 까치가 따라오면서 울었다 해서 까치 작(鵲)자의 변을 따서 성을 석(昔)으로 지었다 한다. 바로 이 석탈해가 석씨의 시조가 된다.
김씨
◉ 경주김씨 - 김알지
석탈해 9년(서기 65년) 어느 날 금성(경주의 옛이름) 서쪽 시림(始林)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탈해왕은 대보 호공을 보냈는데, 금빛의 조그만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그 아래에서 흰 닭이 울고 있었다 한다. 그런데 금궤를 가져다가 열어 보니 한 조그만 어린아이가 들어 있었다. 왕은 하늘이 자신에게 귀한 아들을 준 것이라 여기고 소중하게 키웠다. 이 아이가 커가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나 이름을 알지(閼智)라 불렀고 금궤에서 나왔다 해서 성을 김씨로 하였다 한다. 이 김알지가 바로 경주 김씨의 시조이다.
◉ 김해김씨 - 김수로왕
지금의 경상남도 지역인 변진(弁辰)에 12자치부가 있었는데, 그 자치부를 ꡐ가라ꡑ라고 불렀다. 가라란 원래 큰 연못이라는 뜻인데 각 부가 각각 제방을 쌓아 강물을 막아 큰 소를 만들고 그 부근에 자치부를 설치했다고 해서 그 부의이름을 가라라고 부른 것이다. 이 가라를 이두 문자로 가라(加羅), 가락(駕洛), 가야(伽倻) 등으로 표기하였다. 서기 42년경에 각 가라의 촌장인 아도간(我刀干) 등 9명이 지금의 김해읍 구지봉(龜旨峰) 위에 모여 대계(大稧:당시 자치회)를 베풀고 김수로(金首露) 6형제를 추대하여 여섯 가라의 임금으로 삼았다 수로란 6개의 알 중에서 세상에 처음 나타났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김해 김씨는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그 12대 손인 김유신 장군을 중시조로 삼고 있다.
◉ 김해허씨
가락국 김수로왕이 즉위한지 7년째 되던 어느 7월, 김수로왕은 신하들과
조회를 하고 있었다. 그 때 한 신하가 아뢰기를 대왕께서 오신 후로 좋은 배필을 얻지 못했으니 청컨대 신들의 집에 있는 처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골라 궁중으로 들여보내 배필을 삼으시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왕은 내가 여기에 내려온 것은 하늘의 명령이니 왕후를 삼는 것도 도한 하늘의 명령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대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사양하였다. 하늘이 내려줄 왕후를 기다리던 어느 날 갑자기 바다 서쪽에서 붉은 빛의 돛을 단 배가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북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김수로 왕은 이 소식을 듣고 드디어 왕후가 왔음을 알고 기뻐하며 신하를 시켜 그들을 모시도록 명하였다. 하지만 배에 탄 한 여자가 말하기를 ꡒ나는 본래 너희들을 모르는데 어찌 감히 경솔하게 따라간단 말이냐?ꡓ하며 거부 하였다.
왕은 이 말이 옳다고 여겨 대궐 서남쪽 산기슭에 장막을 치고 임시 궁전을 만들고 기다렸다. 여자는 별포 나루터에 배를 대고 육지에 올라와 높은 언덕에서 잠시 쉰 다음 입었던 바지를 벗어 산신령에게 폐백으로 바치고 나서야 왕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왕은 여자를 직접 맞이해서 함께 장막으로 만든 궁궐에 들어갔다. 왕이 여자와 함께 침전에 드니 여자가 조용히 왕에게 말하였다. ꡒ저는 아유타국 공주로서 성은 허(許)이고 이름은 황옥(黃玉)이며 나이는 16세입니다. 금년 5월에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저를 보고 말씀하시기를 어젯밤 꿈에 옥황상제를 뵈었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랍니다. 수로를 하늘에서 내려 보내 왕위에 오르게 했으니 매우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사람이다. 나라를 새로 다스리고 있는 터에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그대들은 모름지기 공주를 보내서 그 배필로 정하게 하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이 곳으로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배를 타고 멀리 증조(蒸棗: 신선이 먹는 과일)를 찾고 하늘로 가서 반도(蟠桃:하늘나라의 복숭아)를 찾아 이제 모양을 가다듬고 감히 대왕을 뵙게 되었습니다.ꡓ 그 해에 왕후는 곰을 얻는 꿈을 꾼 후 태자 거등공(居登公)을 낳았다. 김수로 왕과 허 왕후는 아들 10명을 낳았는데 맏아들 거등공은 김씨로 왕통을 잇게 하고, 두 아들은 허 왕후의 뜻을 살려 허씨로 대를 이었으며 나머지 일곱 아들은 불가에 귀의하여 성불하게 하였다 한다. 그래서 각각 부성과 모성을 계승한 김해김씨와 김해 허씨는 지금도 서로 혼인을 하지 않고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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